어떻게 그처럼 과감하게
모든 걸 떨쳐낼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낮과 밤의 질서와
내년에 내릴 눈과
사과의 붉은 빛깔과
아무리 곱씹어도 늘 부족하기만 한
사랑에 대한 끈끈한 미련을.
― 쉼보르스카, 「루드비카 바브쥔스카 부인을 애도하는 일 분간의 묵념」, 『끝과 시작』
연애는 늘 풀리지 않는,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있다. 예전에 생각하던 연애는 대략 시작과 끝이 있었다. 지금부터 사귀자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이 연애의 시작이었고, 그만 만나자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이 연애의 끝이었다. 대개의 연인들이 그렇듯 누구를 만나건 패턴은 비슷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데이트, 만나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을 보기도 하고 늦은 시간에는 술을 한잔씩 마실때도 있다. 어쩌다 도서관에 함께 가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다. 도서관은 그냥 단조로운 패턴에 변화를 주는 새로운 패턴이었을 뿐.
처음에는 연애가 싫증나는 것이 바로 이 유사한 패턴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미묘한 것들이 섞여있는데, 예를 들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점도 한 몫한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많이 느낀다. 연애를 하기 이전에는 다른 친구들과도 쉽게 어울리고 노는데, 연애를 시작하면 달라진다. 처음에는 애인과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둘만 놀게 된다. 그러다보면 친구들과 서서히 연락을 덜 하게 되고, 친구들도 연애를 한다고 하면 연락을 잘 안하게 된다. 콩깍지가 벗겨질 때쯤에서야 왜 맨날 얘만 만나야돼? 라는 지겨움과 얜 친구도 안만나나? 하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과정은 무척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 같다.
세상이 연인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픈 욕망, 아마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기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뗄 수 없는 끈끈한 무엇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다. 상대가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않느냐의 차이 정도만 존재할 뿐. 각자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기대가 불만족이 되고, 이러한 불만족이 참을 수 없을만큼 쌓이면 이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기대를 버리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연애의 방식'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 상대에게 푹 빠지면서 생기는 인정욕망(기대욕망)을 버린다면 조금 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떤 연애의 형태와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낯선 이성과 친밀한 행동을 할 때 동요되지 않는 것,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질투를 해야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일부러 사랑의 확인-_-을 위해 질투를 유발시키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끈덕진 기대욕망을 버린 연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애가 아니라, 우정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흔히 우정과 사랑을 별개로 보는 사고방식 때문일까? 지금 쓰면서 놀라는 중이다. 나 지금 뭔 소릴 하고 있는겨. -_-;
내가 아직 환상을 버리지 못한 어떤 사랑의 형태는 이렇다. 폭풍처럼 휘말려서 정신을 못차리는 그런 상태보다 뭔가 동지의 느낌 같은 편하고 자연스러운 관계. 애를 쓰면서 맞추기 보다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존재하는 관계. '우정'에 가깝지만, 또 완전하게 '친구'인 것만은 아닌 관계.(뭐...뭥미?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일까?) 그렇게 되려면 일단 나부터 역량을 키워야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바라는 연애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형태이든, 그렇지 않든 연애는 불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 쵸큼은 씁쓸한 결론이군. ㅋ;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정에 대해 심도깊게 고민해봐야겠다. 연애라는 계약관계는 우정의 관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 이 주제에 관심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아주시면 좋겠...^^;;